본문 바로가기
멘토들의 명연설

멘토들의 명연설 - 시애틀 추장 - 우리 모두는 한 형제입니다

by 손썰미 눈재주 2022. 7. 7.
반응형

시애틀 추장

 


 

우리 모두는 한 형제입니다

-  시애틀 추장  - 

 


 

워싱턴의 얼굴이 흰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우정의 말도 함께 보냈습니다. 그의 부족은 초원을 뒤덮은 풀만큼이나 수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족은 매우 적습니다. 우리 부족은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다음, 드문드문 서 있는 들판의 나무와 같습니다.

백인 추장은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우리가 아무런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주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그대들의 제인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것입니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그대들이 총을 들고 와 땅을 배앗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희망을 가집시다.

우리 울굴 붉은 사람들과 얼굴 흰 형제들 사이의 적대감이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여길 때, 우리는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잃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 부족의 젊은 전사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대들에게 복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미 자식들을 잃은 우리 늙은이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싸움을 통해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부족은 묻고 싶습니다. 그대들이 사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습니까?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만의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것이 거룩합니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 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매우 신성한 것들입니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기억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모두 잊어버리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결코 이 아름다운 땅을 잊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땅이야말로 우리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입니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며, 사슴과 말, 큰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입니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 인간의 체온...... 

이 모두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그러니 워싱턴 추정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워싱턴 추장은 우리가 따로 편히 살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매우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아마 쉬운 일이 아닐 듯 싶습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단지 물이 아닌, 우리 조상들의 피입니다.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속에 비치는 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삶과 기억들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입니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자 갈증을 풀어 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카누를 날라 주고 자식들을 길러 줍니다. 우리가 만약 땅을 팔게 되면, 저 강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꼭 일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들 역시 형제를 대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의 안개가 달아나듯이, 우리 얼굴 붉은 부족들은 당신들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하며,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입니다.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덩어리 모두가 우리에게는 신성한 것입니다.

 

하지만 백인들의 도시에는 조용함이 없습니다. 당신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그저 똑같겠지요.

백인들은 한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쳐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갑니다. 그들에게 있어 땅은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차지하고 나면 또 다른 땅을 찾아 떠납니다. 백인들은 거림낌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전혀 아무렇지 않아 합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히고 맙니다. 그들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팔고 마구 빼앗을 슈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인들의 무서운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 놓을 것입니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드과 전혀 다릅니다. 그대들 도시의 모습은 우리의 눈에 고통을 줍니다. 백인들의 도시에는 도무지 조용한 곳이 없습니다. 봄 잎사귀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히는 소리를 가만히 들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 얼굴 붉은 인디언들이 미개하고 무지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도시의 소음은 그저 귀를 모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에 연못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삶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냄새를 사랑합니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공기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짐승과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모두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삽니다. 그러나 백인은 자신이 숨 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여러 날 동안 죽어 가는 사람처럼 악취에 무감각합니다.

우리가 만약 이 땅을 떠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는 매우 소중하며, 공기는 온갖 생명을 지탱해 주고 신령스러운 기운을 나누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 준 바람은 할아버지가 죽기 전의 마지막 한숨까지 받아 줍니다. 또한 바람은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줍니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나더라도, 그것을 잘 간직해서 백인들고 들꽃으로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인을 고려해 보겠지만, 딱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 땅의 짐승을 형제처럼 대해야만 합니다. 나는 미개인이니 이런 조건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 가는 수많은 물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모두 백인들이 달리는 기차에서 총으로 쏘고 그대로 버려두고 간 것들입니다. 연기를 뿜어내는 기차가 오직 우리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할 때문 죽이는 물소보다 더 중요합니까?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 짐슴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대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삶은 끝나고 오로지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어 풍요로웠지만, 살아 남는 일에 있어서는 더없이 막막한 곳일 뿐입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 아이들이 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이 당은 우리 종족의 삶으로 충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십시오.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들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야 합니다.

 

땅은 우리의 어머니이며 땅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입니다. 그들의 땅에 침을 뱉는 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땅이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이어 주는 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존재가 아니라, 그 그물의 한가닥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대들이 마련해 준 곳으로 떠나라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대들과 멀어져사 평화롭게 살 것입니다. 우리가 남은 생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습니다. 패뱋산 이후로 그들은 단 음식과 독한 술로 몸을 더럽히며 헛된 나날ㅇㄹ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나머지 세월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리 많은 날이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몇 시간, 혹은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언젠가 이 땅에 살았거나 숲 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살았던 위대한 부족의 자식 중에, 한때 당신들만큼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사람들의 죽음을 슬퍼해 줄 사람은 아마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합니까?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 갑니다. 백인들조차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주십시오.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는 우리 모두의 하느님이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땅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미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얼굴 붉은 우리 인디언들에게나, 당신들 백인들에게나 모두 공평합니다. 

이 땅을 만든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백인들 역시 사라져 갈 것입니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르지요.

 

그대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살 곳을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개들을 이땅에 보내 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우리 인디언들을 지배할 권한을 준 하느님에 의해, 그대들은 모두 불태워져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일입니다. 물소들이 죽임을 당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의 냄새로 뒤덮은 언덕이 언제쯤 '말하는 쇠줄(전화선)'로 인해 더럽혀질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덤블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덤불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역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날쌘 조랑말과 사냥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만약 우리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에 동의한다면, 그대들이 말한 그 보호 구역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그곳에서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마치게 되겠지요. 마지막 얼굴 붉은 이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만큼이나 희미하게 기억된다 해도,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부족들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과 고동을 사랑하듯이,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주십시오. 우리다 돌 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주십시오. 당신드이 이 땅을 차지학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주십시오.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돌아오는 연어 떼를 보있으니 저쩌면 또 한번 올거라고 생각한 행복한 겨울은 짐작에 그칠 뿐, 나의 부족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꿈일지 모릅니다. 당신들, 백인들에게 밀려나, 살아남기 위해 고통받아야 할 막막한 겨울 들판으로 뿔뿔이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눈으로 직접 본 연어 떼의 반짝이는 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치겠습니다.

 

 

 

 

 


 

 

시애틀 추장
시애틀 추장은 비국 워싱턴 주 지역에 살던 인디언 부족의 지도자였다.

용감한 전사였던 그는 키도 크고 목소리도 우렁찼던 인물이었어요. 1854년 그는 미국이 압력에 못 이겨 부족의 땅을 미국에 넘기는 조약을 맺었는데, 이때 부족을 모아 놓고 미국의 관리 앞에서 한 연설은 지금까지도 많느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어요. 그가 지키려 했던 땅은 지금의 워싱턴 주에 속해 있던 곳으로 후에 시애틀 추장의 연설을 듣고 감명르 받은 미국의 제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가 그의 이름을 따시 그 도시의 이름을 '시애틀'이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시애틀 시에는 인디언이 살 수 없었어요.

 

 

 

인디언
에스파냐어로 인도인을 인디오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인디언의 유래가 되었다.

1492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어요. 그러나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라 착각하여 그곳에서 살던 원주민들도 인도인이라고 생각하였어요. 이때 에스파냐어로 인도인을 인디오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인디언의 유래가 되었지요. 한편, 콜럼버스네 의해 유럽에 소개된 원주민들은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어요. 유럽인들의 공격으로 마야, 잉카, 아스테카 문명들이 모두 멸망하혔어요. 또한 이때부터 원주민들은 강제로 노예가 되어 팔려 가거나 정해진 땅으로 옮겨 가서 살아야만 했어요.

 

 

 

프랭클린 피어스
미국의 제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1853년 미국의 제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어요. 그때 피어스 대통령의 나이는 49세로, 미국 최초의 40대 대통령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당시 노예 제도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갈등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으며, 남북 전쟁 때 노예 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부를 지지하였지요. 결국 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어요.

 

 

 

 

 

 

출처 : 공부가 되는 일등 멘토의 명언설

 

728x90

댓글